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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신국판 | 420쪽 | ISBN 978-89-325-2126-8
    UBC 열왕기
    원서명 : 1 & 2 Kings
    지은이 : 이안 프로반 | 옮긴이 : 전성민, 최종원 | 2017-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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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 책 소개

이스라엘 왕들의 이야기 너머에 흐르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주석!

리젠트 칼리지의 성서학 교수 이안 프로반, 그는 열왕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구약학자다. 그래서 그의 『UBC 열왕기』는 주목해야 할 열왕기 주석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학계에는 분열 왕국 시대의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 관한 기술을 문학적·역사적으로 의심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하지만 프로반은 통일된 내러티브 문헌으로, 역사서술 문헌으로, 교훈적 문헌으로 열왕기 전체를 면밀히 살피면서, 열왕기가 이스라엘 왕들과 예언자들에 관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그분의 일하심에 관한 이야기임을 보여 준다.


2. 차례
편집자 서문
저자 서문
약어표
서론
1. 솔로몬이 왕이 되다(왕상 1:1-53)
2. 다윗이 솔로몬에게 권고하다(왕상 2:1-11)
3. 솔로몬이 왕위를 견고히 하다(왕상 2:12-46)
4. 솔로몬과 지혜에 대한 그 이상의 이야기(왕상 3:1-15)
5. 지혜로운 판결(왕상 3:16-28)
6. 솔로몬의 이스라엘 통치(왕상 4:1-20)
7. 솔로몬과 열방(왕상 4:21-34)
8. 성전 건축 준비(왕상 5:1-18)
9.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다(왕상 6:1-38)
10. 솔로몬이 왕궁을 건축하다(왕상 7:1-12)
11. 성전의 기물들(왕상 7:13-51)
12.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기다(왕상 8:1-21)
13. 솔로몬의 기도(왕상 8:22-53)
14. 성전 내러티브의 끝(왕상 8:54-9:9)
15. 구름 덮인 영광(왕상 9:10-10:29)
16. 솔로몬의 배교(왕상 11:1-13)
17. 대적과 죽음(왕상 11:14-43)
18. 보론: 정경적 맥락 속에서의 솔로몬
19. 찢겨 나간 왕국(왕상 12:1-24)
20. 여로보암의 죄(왕상 12:25-33)
21.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왕상 13:1-34)
22. 여로보암의 마지막(왕상 14:1-20)
23. 르호보암의 마지막(왕상 14:21-31)
24. 아비얌과 아사(왕상 15:1-24)
25. 나답에서 아합까지(왕상 15:25-16:34)
26. 엘리야와 가뭄(왕상 17:1-24)
27. 엘리야와 바알의 선지자들(왕상 18:1-46)
28. 엘리야와 여호와(왕상 19:1-21)
29. 아합과 아람의 전쟁(왕상 20:1-43)
30. 나봇의 포도원(왕상 21:1-29)
31. 아합이 처치되다(왕상 22:1-40)
32. 여호사밧과 아하시야(왕상 22:41-왕하 1:18)
33. 엘리야에서 엘리사로 바뀌다(왕하 2:1-25)
34. 보론: 정경적 맥락에서의 엘리야
35. 엘리사와 모압 정복(왕하 3:1-27)
36. 엘리사의 기적들(왕하 4:1-44)
37. 아람 사람이 치유되다(왕하 5:1-27)
38. 사소한 기적들, 중요한 기적들(왕하 6:1-23)
39. 포위된 사마리아(왕하 6:24-7:20)
40. (아합의) 끝이 가깝다(왕하 8:1-29)
41. 도끼가 (마침내) 아합을 찍어 내다(왕하 9:1-37)
42. 파멸이 계속되다(왕하 10:1-36)
43. 다윗이 이세벨을 극복하다(왕하 11:1-21)
44. 요아스(왕하 12:1-21)
45. 여호아하스와 여호아스(왕하 13:1-25)
46. 보론: 정경적 맥락에서의 엘리사
47. 아마샤, 여로보암, 아사랴(왕하 14:1-15:7)
48. 이스라엘의 마지막 날들(왕하 15:8-31)
49. 유다의 요담과 아하스(왕하 15:32-16:20)
50. 이스라엘의 마지막(왕하 17:1-41)
51. 히스기야(왕하 18:1-12)
52. 앗수르가 유다를 공격하다(왕하 18:13-19:37)
53. 구원과 유배(왕하 20:1-21)
54. 므낫세와 암몬(왕하 21:1-26)
55. 요시야(왕하 22:1-23:30)
56. 유다의 마지막(왕하 23:31-25:30)
57. 보론: 정경적 맥락에서의 히스기야와 요시야
참고문헌


3. 지은이 소개
이안 프로반 Iain W. Provan
한국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양 복음주의 학계에서는 매우 중요한 학자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열왕기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의 교수로 있다가 1997년부터 리젠트 칼리지에서 Marshall Sheppard 성서학 석좌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주류 성서학계의 비평적 논의와 적극적으로 대화하며 복음주의 구약학의 토대를 더욱 튼튼하게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주석의 서론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그의 저술은 구약을 구약 자체로 면밀히 해석하면서도 기독교 경전이라는 맥락을 놓치지 않는다. 국내에는 『이스라엘의 성경적 역사』(공저, CLC)가 소개되었으며, 최근 출간된 Seriously Dangerous Religion: What the Old Testament Really Says and Why It Matters는 주로 창세기 본문을 토대로 성경이 제시하는 세계관이 얼마나 현대 사회에 여전히 의의가 있는지 밝히는 그의 구약신학의 정수를 보여 주는 책으로, 2016년 캐나다 성서학회로부터 R.B.Y. Scott Award를 수상했다.


4. 옮긴이 소개
전성민
서울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리젠트 칼리지에서 성서언어(M.C.S.)와 구약학(Th.M)을 공부했다(Th.M. 논문의 지도 교수가 이 주석의 저자 이안 프로반이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구약 내러티브의 윤리적 읽기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D.Phil.)를 받았으며, 학위 논문이 Ethics and Biblical Narrative라는 제목으로 한국 신학자 최초로 옥스퍼드 신학 및 종교학 단행본 총서로 출판되었다. 『사사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성서유니온), 『온 세상을 위한 구약 윤리』(존 바턴 저, IVP) 등을 저술하고 번역했다. 

최종원
경희대학교에서 회계학을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서양사를 공부했다. 영국 버밍엄 대학교 중세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교회사 교수로 4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서양문화사』(공저, 형설출판사), 『12세기 르네상스』(로버트 스완슨 저, 심산출판사), 『왜 존왕은 마그나카르타를 승인했을까?』(자음과 모음사) 등을 저술하고 번역했다. 유럽 중세의 대학, 면죄부, 위클리프와 롤라드 운동 등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기독교 세계관으로 유럽 교회사와 한국 교회사 등을 다시 짚어 보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5. 본문 중에서
열왕기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완결적이지 않다. 그것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는 성경 전체 이야기의 일부이며, 그 전체 정경적 맥락에 대한 안목을 지닌 그리스도인 독자가 읽어야 한다. 이 서론을 시작하면서 주장한 대로 성경 내의 개별 책들은 성경 전체라는 환경 안에서 읽어야 한다. 이는 열왕기가 자체적인 신학적 중요성이 없으며 그것의 의미는 전적으로 신약이 부여한다는 뜻이 아니다(과거에는 이따금 그런 뜻으로 여겨졌다). 열왕기의 의미를 신약이 부여하게 하는 것은 구약을 경전으로 진지하게 다루는 것이 아니다. 구약은 그 자체의 방식대로 교회에 말하는 것으로 여기며 읽어야 한다. 신약에 비추어 읽어야 할 뿐 아니라 신약을 이해하는 (단순히 역사적인 맥락만이 아니라) 신학적 맥락을 제공한다고 여기며 읽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 전체가 개별 책을 해석하는 환경이라는 주장은, 그리스도인들이 열왕기 같은 책을 읽을 때, 마지막까지 전개된 성경 전체 이야기에 비추어 읽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그 이야기의 중심인물인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동에 비추어 읽어야 한다.
_서론 중에서

우리는 다윗 왕조가 정말 과거나 미래에 비해 현재에 더 피에 대해 결백한가 하는 질문에 직면한다(왕하 21:16; 24:3-4). 만약 하나님이 진정으로 솔로몬이 왕이 되고 왕조를 잇도록 명하셨다면, 그것은 (솔로몬이 2:31-33에서 암시하듯) 다윗 집안이 결백하기 때문이 아니라(잠 16:12 참조),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의 죄를 처리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저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하나님이 다윗의 집을 통해 그분의 목적을 이루어 가시는 것은(하나님이 그 집을 견고하게 하셨다), 그 집의 첫 두 사람이 완전히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열왕기의 처음 장들이 그들마저도 선하지 않다는 충분한 증거를 제공한다), 다윗의 집을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윗 언약의 조건성은 이야기의 일부분에 불과하다(앞의 2장을 보라). 다윗 언약의 무조건적 측면 역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 점은 열왕기 전체에서 사실이다. 은혜가 없으면 율법은 인간들을, 그들이 왕이든 아니든, 재앙으로만 이끌 수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_3. 솔로몬이 왕위를 견고히 하다(왕상 2:12-46) 중에서

8:27-30의 주요 목적은 (하나님이 어디서 들으신다고 말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참으로 하늘이야말로 하나님이 들으시는 장소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땅에 ‘거하실’ 수 없다(27절). 13절의 진술에도 불구하고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며, 다만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장소, 즉 하나님의 눈이 바라보시는 곳(29절. 사 66:1-3 참조)으로 여겨야 한다. 기도를 들으시는 것은 “하늘에서” 일어난다(30절).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있다면) 하늘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엄밀하게 말하자면, 하나님은 “하늘들의 하늘”에서조차도 거하실 수 없다(27절). 완전히 초월적이시기에 하나님은 결코 어딘가에 ‘자리 잡으실’ 수 없다. ‘거함’에 대한 인간의 모든 표현은 항상 제한적이어야 하며, 인간은 그 한계를 끊임없이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묘사하려는 시도들이 실재를 사실상 축소시키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신적 초월성의 한 가지 결과는 사람들이 기도하기 위해 지정된 한 장소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눈이 성전 안에 있기보다 성전을 “향하여” 바라보시기에(29절)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성전 안에 들어가지 않고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29-30절. 요 4:21-24 참조).
_13. 솔로몬의 기도(왕상 8:22-53) 중에서?

우리는 왜 앞에서는 히람의 금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을지 의문해 보아야 한다. 특히 분명 바로 그 금이 솔로몬이 성전에 사용한 금이었을 텐데 말이다(왕상 6:20-22, 28, 30, 32, 35; 7:48-51). 식량의 풍족함으로 번영을 묘사하는 4-5장에서 솔로몬의 영광을 묘사하는 데 금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진정 무엇일까? 또 왜 ‘하나님에게서 돌아서는’ 것에 대한 9:6-9의 심각한 경고 후에 이처럼 많은 양의 금이 언급되었을까? 게다가 우리로 하여금 솔로몬이 ‘돌아서는’ 것을 예상하게 만드는 다른 자료들과 더불어 금을 언급했다(9:15-25. 10:26-29에 대한 주석 참조). 이것들은 특히 잠언 30:8과 신명기 17:17 같은 본문에 비추어 볼 때 흥미로운 질문들이다. 과도한 부는 배교의 위험을 초래한다.
_15. 구름 덮인 영광(왕상 9:10-10:29) 중에서?

이제 우리는 11장에서 우려했던 왕국이 찢겨 나가는 국면에 대해 읽게 된다. 모세가 애굽의 바로 왕조 아래 노예 생활을 하던 백성들을 이끌고 나왔던 것처럼, 여로보암은 다윗 왕조 아래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을 이끌어 낼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듯이, 르호보암의 완악함도 그러한 분열을 촉발할 것이다. 다윗 왕조로부터의 ‘출애굽’은 이스라엘을 새로운 약속의 땅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러나 ‘모세 같은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든 ‘아론 같은 여로보암’으로 변화함에 따라 그들은 곧 길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마침내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나 다른 곳으로 추방될 것이다.
_19. 찢겨 나간 왕국(왕상 12:1-24) 중에서?

여호수아 7장에 나오는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의 정체가 ‘온 이스라엘’ 앞에서 공개적으로 드러났다. 이제 지금의 문제 또한 (이스르엘에서 북서쪽으로 약 27킬로미터 떨어진 해안가에 있는) “갈멜산”에 모인 ‘온 이스라엘’(NIV 19절에 따르면 ‘이스라엘 전역에서 온 사람들’) 앞에서 해결될 것이다. 누가 이 재난에 책임이 있는가? 바알 숭배자들인가, 여호와를 경배하는 자들인가? 이 질문은 또 다른 질문과 결부되어 있다. 즉, 누가 참 하나님인가?(21절) 사람들은 21절의 NIV 번역이 함의하는 만큼 중립적이지 않다(추가 주석을 보라). 그들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머릿속으로 유불리를 가늠하는 동안, 실제로 그들은 바알을 신으로 숭배하고(24절) 여호와께 예배하는 것은 등한시하고 있었다(30절의 무너진 제단을 주목하라). 그들은 마음이 떠난 백성이다. 불 시험은 그들을 돌이키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24절)이며, 백성들은 “그를 따를” 것을 요구받을 것이다. 엘리야가 압도적으로 불리한 조건으로 도전해 극복해 낼 것이기 때문이다(22절).
_27. 엘리야와 바알의 선지자들(왕상 18:1-46) 중에서?

솔로몬과 마찬가지로 엘리야도 신약에서 예수님의 예표로(이 경우, 세례 요한의 예표로도) 기능할 뿐 아니라 하나님 백성의 일원인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으로도 등장한다. 신약의 저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엘리야의 생애에서 귀한 교훈을 ?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 중 ‘남은 자’들과 일하시는 방법에 관해서든지(롬 11:1 이하; 남은 자는 열왕기를 통틀어 중요한 주제다), 믿음에 관해서든지(히 11:32-39), 기도에 관해서든지(약 5:13-18) ? 배울 수 있다고 확언한다. 엘리야 이야기에 대한 나 자신의 읽기를 토대로 그에게서 섬김의 삶에 관한 균형감 있는 관점에 대해, 겸손의 필요성에 대해, 하나님의 계획 자체보다는 기꺼이 그 계획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태도에 대해(마 3:11-15; 11:11; 20:20-27; 요 3:27-30; 고전 3:1-2; 빌 1:12-
18 참조) 배울 점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성공에 있어서나 실패에 있어서나 엘리야는 유익한 선생이다.
_34. 보론: 정경적 맥락에서의 엘리야 중에서?

나아만은 선지자가 자신의 예언적 은사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고 원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으며 그들의 상전을 기쁘게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이를테면, 왕상 22:13). 나아만은 그가 들은바(3절) 사람을 고칠 능력이 있는 사람을 만나러 왔다. 그는 외교를 활용하고 엄청나게 값진 선물을 가져오며 기본 준비를 면밀히 했다. 자신의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9절) 빠르고 당당하게 엘리사의 집 문에 도착한 이 크고 존귀한 자(1절)는 사적이고 즉각적인 관심, 즉 곧바로 치료해 줄 것을 기대한다(11절). 그는 중재자(“사자”, 10절)를 통해서만 말을 듣고, 게다가 다른 곳으로 가라는 말을 들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중요한 사람을 이렇게 다루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엘리사가 치유에 관해서가 아니라 그저 제의적 정결에 관해서만 말하는 것 같다는 점이었다(12절에 대한 추가 주석을 참조하라). 나아만은 자신의 고향에 있는 “아바나와 바르발” 강에서도 그러한 정결 의식을 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허탈감을 느끼며 그는 “분노하여” 떠난다(12절). 나아만에게 여호와는 단지 선지자가 시키는 대로 하는 지역의 신일 뿐이었다. 그에게는 신이 아니라 선지자가 치료자다. 왜 선지자는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거부하는가?
_37. 아람 사람이 치유되다(왕하 5:1-27) 중에서?

‘여호수아’, ‘엘리사’, ‘예수’라는 이름은 본질적으로 같은 의미(‘하나님이 구원하신다’)이며, 복음서에서 세례 요한이 엘리야와 매우 분명히 동일시된다는 것(이 책의 34장 참조)을 포함해 예수님과 엘리사를 연결하는 많은 고리들을 고려할 때, 신약성경에서 예수님과 엘리사의 연관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명시적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것은 꽤 흥미롭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엘리사는 모두 더 유명한 이들의 후계자였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억제되었을 수 있다. 예수님의 탁월성을 손상하는 의미가 조금이나마 담겨 있으므로 예수님이 세례 요한의 계승자였다는 의견을 피하려는 자연스런 바람이 교회 안에 있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분명 당면한 문제였기에 특히 그렇다(요 1:1-42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조심스러운 방식을 주목하라). 따라서 예수님과 관련해 엘리사의 예표론적 중요성이 간과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_46. 보론: 정경적 맥락에서의 엘리사 중에서?

솔로몬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장면에서 히스기야는 “예물”(히브리어로 ‘민하’, 12절. 왕상 4:21; 10:25 참조)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벨론 방문객들에게 자신의 “군기고”와 “창고”와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보여 준다(13절. 왕상 10:1 이하 참조). 그러나 앞에서 자주 상기했듯이 그들의 시대는 더 이상 솔로몬 시대가 아니다(왕상 15:16 이하; 22:48-49 등에서 앞에 나온 솔로몬과 유다 왕들의 대조를 참조하라). 다윗의 가장 위대한 후계자였음에도 시계는 그렇게까지 뒤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이 시대에는 예루살렘의 화려함을 둘러본 이방인들이 단순히 경탄만 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그들이 적대적인 의도로 돌아올 것을 예상한다. 이사야가 왕에게 말한다. 언젠가 그 바벨론 방문자들은 그들이 본 것들을 자신들이 왔던 “먼 지방”으로 가져가 버리고(14, 16-18절; 왕상 8:46 참조), 왕의 “아들”들 중 일부를 데려가 버릴 것이라고. 히스기야는 놀랍게도 그 소식을 듣고 동요하지 않는다. 최근 죽음에서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히스기야는 자신이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peace and security, NIV)이 있는 것으로(19절), 좀더 오래 솔로몬처럼(왕상 5:4 참조) 생활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 장에서 이 의로운 왕의 자기중심성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_53. 구원과 유배(왕하 20:1-21) 중에서?

요시야를 소개하는 구절들은 그가 어떤 부류의 왕이 될지 우리의 주의를 환기한다. 기대했을 법한 “다윗”에 대한 언급이 있다. 그러나 신명기 17:20을 분명히 언급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신명기 17:20에서 이상적인 왕은 율법에서 떠나 “좌우로” ‘치우치지’(왕하 22:2에서처럼 히브리어로 ‘슈브’) 않는 왕이다. 이는 열왕기하 22-23장에서 요시야를 일반적으로는 모세 율법과, 특정하게는 모세라는 인물과 연결하는 많은 언급들 중 첫 번째에 불과하다. 열왕기 저자에게 요시야는 하나님에 대한 신실함에 있어 심지어 다윗과 히스기야를 능가하는, 모든 왕 중 최고의 왕이었다(23:21-25 참조). 요시야처럼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를 의지한 왕은 아무도 없었다.
_55. 요시야(왕하 22:1-23:30) 중에서?

솔로몬처럼 히스기야와 요시야는 마침내 다윗의 보좌에 앉아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알릴 자의 길을 예비하며 정경 전체 안에서 예표적인 기능을 한다. 그러나 솔로몬처럼 그들은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을 위한 행동 모델일 수도 있다. 그들은 위기 때, 심지어 대적의 큰 군대나 고난에 포위된 때에도 신자들이 어떻게 신뢰하고 기도해야 하는지 상기시킨다(왕하 18:17-20:7; 마 26:36-46과 평행 구절들; 눅 21:34-36; 요 14:13-14; 행 4:23-31; 16:25-34; 롬 15:30-33; 엡 6:10-18; 빌 4:6-7; 약 5:13-16). 그들은 지속적인 예배 개혁의 중요성과, 하나님만이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초점이심을 확고히 하며 우리의 행동을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왕하 18:1-8; 23:1-25; 마 6:1-34; 19:16-24; 눅 18:9-14; 롬 12:1-2; 고전 10-14장). 마지막으로, 과거의 영감된 저술을 통해 현재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함을 상기시킨다(왕하 22:11 이하; 마 5:17-20; 딤후 3:14-17). 심지어 그 말씀이 주변 문화의 흐름에 반대되고, 보상을 기대할 수 없을지라도 순종해야 함을 상기시킨다. 이것은 열왕기 읽기를 마무리하기에 적합한 설명이다. 이제 우리는 본문에서 눈을 돌려 성경을 삶에 적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_57. 보론: 정경적 맥락에서의 히스기야와 요시야 중에서?


6. 출판사 리뷰
『UBC 열왕기』는 “서론”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는 주석서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 이안 프로반의 제자이자, 번역자 중 한 명인 전성민 교수는 독자들에게 이 주석의 “서론”을 꼭 읽으라고 당부한다. 일반적으로 주석서의 서론은 제목, 구조, 저자, 배경, 연대, 신학 등을 다룬다. 그러다보니, 주석을 찾아보는 이유가 특정 본문에 대한 해설을 읽기 위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떤 주석의 서론을 작정하고 읽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안 프로반의 서론은 단순히 열왕기에 대한 역사적, 문학적 배경 정보를 논의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서론에서 “내러티브 문헌”, “역사서술 문헌,” “교훈적 문헌”이라는 열왕기의 세 가지 장르적 본질을 논의한다. 이 논의는 전형적인 주석의 서론을 넘어 성경해석의 첨단 논쟁점들에 대한 열왕기 사례 연구에 가깝다. 특정한 물리적 시공간 안에서 벌어진 일들을 특정한 문학적 관습을 통해 특정 목적을 가지고 기록한 글을 특정한 종교적 헌신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이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최고의 논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해석이 문학, 역사, 신학과 어떻게 상호 작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 탁월한 논의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이 서론의 문제의식과 주장은 후에 『이스라엘의 성경적 역사』의 1부 “역사, 역사서술, 그리고 성경”이라는 곳에서 더 상세하고 깊이 있게 다루어진다).

번역에 충실히 반영하지 못한 한 가지를 밝혀야 할 것 같다. 서론에서 설명하듯, 프로반은 이 주석에서 열왕기가 최종 형태로 만들어지기까지 ‘관여한 인간적인 영향력들을 언급할 때’ “저자들”(aurhors)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이 번역서에서는 서론을 제외한 본문 주석에 나오는 “aurthors”라는 표현을 역자와의 협의 하에 “저자”로 표기했다. 성경 각 책들의 저자가 누구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상당히 경직된 접근을 하는 한국의 분위기에서 “저자들”이라는 표현이 낯설 수 있고 심하면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번역자 전성민 교수는 “프로반의 논의와 용어들은 성경 본문에 대한 철저한 헌신과 성경의 역사성에 대한 깊은 존중에 뿌리를 둔 것이므로, ‘저자들’이라는 표현에서 낯설음이나 거부감을 느끼는 독자는 그 정서가 성경 자체에 대한 헌신이 아니라 자신에게 익숙한 전통에 대한 습관적 호감은 아닌지 성찰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프로반의 경우, 성경 본문 자체에 대한 그의 깊은 헌신으로 인해 자신이 기존에 사용해 왔던 해석 방법론을 포기하면서 이 주석을 저술했기 때문이다(서론의 주15 참조). 이러한 성경 자체에 대한 저자의 헌신에 독자들도 다음과 같은 성찰로 응답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성경 본문과 그것의 무대인 역사인가, 아니면 정통이라는 허울 아래 있는 사람의 전통인가?’

리젠트 칼리지의 성서학 교수 이안 프로반, 그는 열왕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구약학자다. 그래서 그의 『UBC 열왕기』는 주목해야 할 열왕기 주석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학계에는 분열 왕국 시대의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 관한 기술을 문학적·역사적으로 의심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하지만 프로반은 통일된 내러티브 문헌으로, 역사서술 문헌으로, 교훈적 문헌으로 열왕기 전체를 면밀히 살피면서, 열왕기가 이스라엘 왕들과 예언자들에 관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그분의 일하심에 관한 이야기임을 보여 준다. 그래서 그의 『UBC 열왕기』는 한 권의 책으로 읽을 때 더 진가가 드러나는 주석이다.

“이 주석은 여기저기 조금씩 읽기보다는, 이 책이 해설하는 열왕기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를 읽도록 저술되었다. 열왕기 고유의 메시지를 충실하게 전하려면 열왕기 전체와 씨름해야 한다. 열왕기는 부분적으로 들추어 보는 책이 아니라 전체로 읽는 책이다!”_서론 중에서

『UBC 열왕기』가 속한 Understanding the Bible Commentary(이하 UBC)는 존 골딩게이, 트렘퍼 롱맨, 고든 피, F. F. 브루스 등 쟁쟁한 저자군으로도 유명한 주석 시리즈다. UBC는 목회자와 신학생은 물론 성경을 진지하게 읽고자 하는 모든 이를 위한 주석이라 할 수 있다. 최고의 학자들 중에서 성경을 연구의 대상으로만 삼지 않고 삶에서 실천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집필자로 선정했다는 점만 봐도 이 주석의 지향점을 알 수 있다. 『UBC 열왕기』도 학문의 영역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학자들이 모든 사람이 읽고,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집필한다는 UBC의 장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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