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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136X205 | 372쪽 | ISBN 978-89-325-2701-7
    세계관적 설교
    지은이 : 전성민 | 2018-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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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 책 소개
모든 성경읽기와 설교의 목적은 세계관의 변화다!

‘세계관적 설교’란 무엇일까? 그것은 먼저 성경 본문이 어떤 세계관을 전제로 기록되었으며 독자들이 어떤 세계관을 가지도록 도전하는가에 관심을 둔 설교다. 따라서 청중의 세계관 변화(마음과 몸의 참된 돌이킴)를 목적으로 한다. 또한 세계관과 관련된 주제를 다루는 설교이기도 하다. 이 책은 2015년부터 3년간 「묵상과 설교」(성서유니온)에 “세계관과 설교”라는 꼭지로 연재된 글을 모은 것이다. 오랫동안 이 주제에 관심을 가져 온 전성민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세계관을 특징짓는 ‘창조의 복음, 일상의 복음, 공공의 복음’이라는 틀 아래 23가지 주제를 다루고 그에 대한 설교까지 제시하고 있다. 책의 제목에서 짐작하듯 설교자들이 큰 도움을 얻겠지만, 설교를 듣는 이들도 자신의 세계관을 다시 생각하는 유익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2. 차례
저자 서문
서론. 세계관과 설교

1부 창조의 복음
1. 하나님의 마음 알기
2. 폭풍 속에서 창조주께 드리는 기도
3. 타락한 세상은 운명이 아니다
4. 배제와 혐오에서 벗어난 구속 공동체
5. 하나님 나라 알아보기
6. 성경 이야기와 복음
7.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8. 몸의 부활,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

2부 일상의 복음
9. 돈: 앎과 삶을 연결하는 핵심 고리
10. 일과 안식: 일상의 예배
11. 공동체: 하나님과 사람의 존재 방식
12. 음식: 삶과 몸에 체화된 세계관
13. 거룩: 일상을 살아가는 원리
14. 소명: 세상을 위한 부르심
15. 세상: 하나님의 활동 무대
16. 선교: 하나님의,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위한.

3부 공공의 복음
17. 휴머니즘: 하나님의 형상에 근거한 인간의 동등한 존엄성
18. 동물: 같은 하나님의 피조물
19. 상식: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지혜
20. 국가: 하나님의 종
21. 시민불복종: 권력의 착각을 깨뜨리는 하나님의 통치 드러내기
22. 윤리: 이야기가 형성하는 성품, 이야기가 폭로하는 세상
23. 평화: 지금 여기 임하는 하나님 나라


참고문헌


3. 지은이 소개
전성민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학장, 세계관 및 구약학 교수.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리젠트 칼리지에서 성서언어(M.C.S.)와 구약학(Th.M.)을 공부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구약 내러티브의 윤리적 읽기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D.Phil.)를 받았으며, 2014년 한국인 신학자로는 최초로 학위 논문이 옥스퍼드 신학 및 종교학 단행본 총서로 출판되었다(Ethics and Biblical Narrative). 『사사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성서유니온)를 저술했으며, 기드온 이야기를 통해 한국 교회의 윤리적 문제를 성찰하는 글을 Ecclesia and Ethics: Moral Formation and the Church에 기고했다. 2005년부터 8년간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에서 구약학을 가르쳤으며, 2013년부터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ancouver Institute for Evangelical Worldview)에서 세계관 및 구약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창립 연구위원이었으며, 캐나다로 일터를 옮긴 후로는 초빙연구위원으로 섬기고 있다. 전문영역인 구약 윤리 외에 평신도 신학, 세계관적 성경읽기와 설교, 미션얼 운동의 구약적 토대, 성서학과 과학의 관계 등에 관심이 많다. 


4. 본문 중에서
나는 노글이 논의한 두 가지 개념을 합친 ‘하나님의 마음’에 관해 성찰할 때, 기독교 세계관이 소위 냉철한 이성(객관성)과 뜨거운 가슴(주관성)을 함께 지닐 수 있다고 제안하고 싶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통하는 것, 즉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 기독교 세계관의 근본이 될 때, 우리의 세계관은 전인격적이 될 수 있다. 마음은 지성뿐 아니라 감정을 담아내며, 그렇기에 성경의 증언에 토대해 하나님의 감정을 알고 느끼는 것은 기독교 세계관을 온전케 한다. 예리한 지적 인식은 깊고 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지성의 제자도’뿐 아니라 ‘욕망의 제자도’가 필요하다.
_1. 하나님의 마음 알기

타락이 창조를 붕괴시키지 못했으며 창세기 3장에서 사람의 범죄로 인해 임한 저주들은 사람과 창조세계가 벗어나지 못하는 영원한 운명이 아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3:16을 근거로 이제는 남자가 여자를 다스리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창조의 능력과 타락의 한계를 간과한 심각한 잘못이다. “남자가 여자를 다스릴 것”이라는 말은 타락 이후 벗어날 수 없게 된 남녀의 운명이 아니며 명령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반역한 사람들이 겪게 될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을 서술하는 것일 뿐이다. 여자와 남자 모두를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기로 선택할 때, 남녀는 동등함과 친밀함 속에 살아갈 수 있다(창 1:27; 2:23-25).
_3. 타락한 세상은 운명이 아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 말하고, 그러니 그것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한다는 논리는 비교적 쉽게 수긍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일해서 번 돈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는 말은 흔쾌히 수긍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자신의 노동 대가는 자신의 것이니 내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는 것이 우리 시대의 세계관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사람들이 일해서 얻은 정당한 사적 소유조차 만나와 같은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의 처분이나 사용도 여전히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게 균등해야 한다는 만나 경제의 원리를 따라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웨슬리는 돈지갑이 회개해야 참된 회개라고 말했습니다. 세계관의 변화는 삶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누군가의 필요는 나의 소유보다 우선합니다. 그렇기에 내가 땀 흘려 번 돈을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우는 데 사용하는 것, 그것이 예수를 알고 우리의 세계관이 변했다는 가장 뚜렷한 증거일 것입니다.
_9. 돈: 앎과 삶을 연결하는 핵심 고리

우리는 “소박한 밥상”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헬렌 니어링은 『소박한 밥상』에서, 불로 익혀 먹는 화식이 아니라 생식을, 생명을 죽여 만드는 육식이 아니라 채식을, 복잡한 가공 음식이 아니라 신선한 음식을 먹자고 제안합니다. 이 제안 모두가 무조건 “기독교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창조세계를 존중하고 음식이 부족해 어려움당하는 이웃을 생각한다면, 소박한 밥상은 진지하게 고민해 볼 주제입니다. 우리의 밥상이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도 오천 명을 배불리 먹게 했던 한 어린아이의 도시락보다,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시는 주님의 몸과 피를 나누는 다락방의 식탁보다 너무 화려하고 기름지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우리”가 함께 일용할 양식을 누리는 것을 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_12. 음식: 삶과 몸에 체화된 세계관

삶의 공간과 삶의 방식으로서의 세상을 구별하는 것은 세상과 관련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즉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말은 성도는 삶의 공간으로서 세상 안에서 살아가지만 그 삶은 세상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러한 상황을 배(boat)와 물의 관계를 통해 비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배다운 배가 되기 위해서는 물 위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배 안에는 물이 없어야 한다. 이것이 배와 물의 가장 바람직한 관계다. 성도의 삶은 세상에서 펼쳐져야 한다. 그러나 성도의 삶에 세상의 방식이 스며들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종종 성도의 삶이 마치 물에서 꺼내져 마른 땅 위에 놓인, 그런데 그 안에는 물이 가득 찬 망가진 배와 같은 모습일 때가 있다.2 세상과 떨어져 사는 것 같지만 삶의 방식은 철저히 세상적인 경우가 그렇다. 이 배가 성도가 아니라 교회여도 이 비유는 여전히 유효하다. 교회는 항상 거룩하고 세상은 항상 악한 것이 아니다. 세상도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의 방식을 따른다면 거룩하며, 교회도 그 방식이 하나님을 등진다면 얼마든 ‘세상적’일 수 있다.
_15. 세상: 하나님의 활동 무대

존 스토트는 자기중심성(self-centeredness)을 죄의 심각한 특성으로 말한다. 보통 자기중심성을 개개인의 차원에서 이해하지만, 그것을 인간 전체에 적용할 수도 있다. 즉,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 사실상 하나님
과 인간만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죄의 특성인 자기중심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인간만 하나님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세계관이 얼마나 인간의 자기중심성에 매몰되어 있는지, 또는 우리의 세계관이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얼마나 인간 중심적인지 성찰할 수 있는 한 가지 기준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자연과 동물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다. 이런 점에서 동물에 대한 세계관적 성찰은 매우 중
요하다. 린지는 동물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 “인간의 자아 숭배라는 우상숭배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구출”할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과연 우리의 세계관에는 동물이 차지하는 자리가 있는가? 우리는 동물이라는 창조‘세계’의 일원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_18. 동물: 같은 하나님의 피조물

권력은 하나님의 일꾼이며 그 목적은 공의와 샬롬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권력이 항상 이런 신분과 목적에 합당하게 작동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권력에 대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비판하고 저항해야 한다. 이것을 ‘시민불복종’이라고 부른다. 시민불복종은 단지 교회로 대표되는 좁은 의미의 종교적 영역과 권력이 충돌될 때만 요구되지는 않는다. 일상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해야 하기에, 권력에 대한 비판과 저항은 삶의 어떤 영역에서든 요청된다.
_21. 시민불복종: 권력의 착각을 깨뜨리는 하나님의 통치 드러내기


5. 출판사 리뷰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나의 세계관과 성경 저자가 제시하는 세계관을 충돌시키고, 그것이 나의 세계관을 변화시키도록 나를 내어 놓는 것이다.”

성경은 단순히 우리에게 말을 거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세계관을 자극하고 도전한다(참조. 『묵상의 여정』, 성서유니온). 성경의 저자는 이런 목적을 지니고 있지만, 성경 저자 앞에 나를 내어 놓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도공 앞의 진흙이나 석공 앞의 돌은 백지와 같은 자연 그대로여서 그 장인의 생각과 의도대로 빚고 깎기가 그리 어렵지 않지만, 우리의 세계관은 이미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문화 속에 태어나 자라면서 우리는 세상과 인생, 그리고 궁극에 대한 어떤 시각을 지니게 된다. 따라서 그렇게 형성된 세계관을 성경이 도전하는 대로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성경읽기를 통한 세계관의 변화’라는 말이 낯설게 들릴 수도 있고, ‘성경읽기의 목적은 은혜를 받는 거지 그런 게 아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세계관을 변화키시지 않는 성경읽기는 근원적 치료가 아닌 고통만 잊게 하는 진통제와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성경읽기를 통한 세계관의 변화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바른 성경읽기는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대답을 뿌리부터 다시 점검하게 한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곪아 가는 상처의 고통만 덮는 약으로 먹을지, 아니면 세상을 이해하고 바라보고 살아가는 방식을 뿌리까지 뒤집는 약으로 먹을지 결정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세계관을 변화시키는 성경읽기에 대한 관심은 세계관을 변화시키는 설교(세계관적 설교)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관심은 “우리가 하는/듣는 설교는 얼마나 세계관적인가?” 하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면 ‘세계관적 설교’는 무엇일까? 그것은 먼저 성경 본문이 어떤 세계관을 전제로 기록되었으며 독자들이 어떤 세계관을 가지도록 도전하는가에 관심을 둔 설교다. 따라서 청중의 세계관 변화(마음과 몸의 참된 돌이킴)를 목적으로 한다. 또한 세계관과 관련된 주제를 다루는 설교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러한 관심과 필요에 의해 쓰였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2015년부터 3년간 「묵상과 설교」(성서유니온)에 “세계관과 설교”라는 꼭지로 연재되었던 글이다. 오랫동안 이 주제에 관심을 가져 온 전성민 교수는, 연재된 글들을 책으로 엮으면서 세계관을 특징짓는 ‘창조의 복음, 일상의 복음, 공공의 복음’이라는 틀 아래 23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물론 ‘세계관적 설교’라는 제목 때문에 자칫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각 주제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그에 대한 설교까지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설교자들은 물론 설교를 듣는 이들의 세계관에도 도전을 주는 책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비단 설교자들만 읽지 않았으면, 일반 성도들도 많이 읽었으면 하는 것이 저자의 바람이다.

“세계관적 설교가 무엇인지, 그 세 가지 특징을 정리해 보았다. 그러나 이 특징들은 사실 모든 설교가 지녀야 할 특징이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일차적으로 주어졌던 창세기 말씀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강력한 도전을 줄 수 있는 것은 창세기 1장에 담긴 서술된 세계관과 규범적 세계관을 구별했기 때문이다. 이 둘을 구별하지 못할 때, 하나님이 온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장엄한 선언을 달이 광명체라고 우기는 난센스로 격하시키고 만다. 여기서 서술적 세계관을 걸러내는 것은 역사적 배경 탐구의 한 측면이며, 본문의 역사적 배경을 살피는 해석은 모든 설교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또한 창조를 간과하고 일상성과 공공성을 잃어버려 이원론적이고 사사로워진 기독교는 성경의 기독교가 아니다. 그렇기에 모든 설교는 바른 창조 이해를 통해 복음의 일상성과 공공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생각의 단편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틀 전체의 변화를 바라는 것이야말로 모든 설교의 목표가 아니겠는가. 이에 모든 설교는 넓은 의미에서 세계관적 설교여야 한다.”_서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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