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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128X188 | 272쪽 | ISBN 978-89-325-5059-6
    하나님의 공동선: 모든 사람을 향해 열린 손
    지은이 : 송용원 | 202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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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 책 소개


우리가 잃어버린 하나님의 얼굴, 공동선의 삶

 

공동선은 나만(홀로) 좋음이 아닌 하나님과 나와 너의 좋음이다. 또한 서로를 (그리고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바로 공동선이시다. 따라서 우리도 그 사랑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얼굴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공동선』은 그리스도인이 성경적인 공동선 사상을 이해하도록 돕는 입문서로, 갈수록 신앙이 사유화되어 가는 한국 교회에 개인의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모두를 소중히 여기는 (하나님 나라의 속성인) 공동선의 삶이 회복되기를 꿈꾸는 책이다.

2. 차례 


들어가는 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기도 

 

1_ 하나님 나라를 보는 안경 
2_ 우리 곁에 늘 있어야 할 것
3_ 밭에 감추인 보화 
4_ 좋은 것의 숨은그림찾기 
5_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나가는 말. 함께 춤출 수 있는 무대가 되려면 
주 
참고문헌 

 

3. 지은이 소개

 

송용원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B.A.),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예일 대학교(S.T.M.),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Ph.D)에서 조직신학을 공부했다. 미로슬라브 볼프, 데이비드 켈시, 크리스토퍼 빌리에게 삼위일체와 선물신학, 철학적 신학, 교부 신학을 익히고, 수잔 무어와 데이비드 퍼거슨에게 개혁신학과 공적신학을 사사했다. 그리고 “종교개혁가 칼뱅 신학에 나타난 공동선 사상”(The Common Good in the Theology of John Calvin)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Ph.D.)를 취득했다.
온누리교회, 뉴저지초대교회, 새문안교회에서 부목사로 대학생.청년 사역을 했으며, 미국 유학 시절 매사추세츠 캠브리지에서 보스톤온누리교회, 뉴욕 맨해튼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서 뉴프론티어교회를 개척하여 자신이 배운 개혁신학을 철저히 지향하면서도 현대적인 목회 사역을 펼쳤다. 
현재 은혜와선물교회를 담임하면서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객원교수로 활동하며, 성서유니온 「매일성경」에 “성경 속 공동선을 찾아서”를 연재하고 있다. 저서 『칼뱅과 공동선: 프로테스탄트 사회 윤리의 신학적 토대』(IVP, 2017)가 국민일보 올해의 책(신학부문)에 선정된 바 있다.

 

4. 본문 중에서

 

하나님은 생명을 살리는 선한 마음을 가진 한 사람을 확보하기 위해 아브라함을 불러내 평생 이끌어 가셨고, 아브라함도 그분의 인도하심과 가르치심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아브라함에 이어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그 외 모든 형제도 처음에는 자기밖에 모르던 인간으로 자라다가 결국 세상 모든 민족을 복되게 하는 공동선의 사명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혹독하게 겪었습니다. 생명의 길은 좁기도 하거니와, 지름길도 없고 꽃길도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공동선의 길은 유혹에 시달리던 수도자 베네딕트가 정화된 마음을 얻기 위해 벗은 몸으로 피투성이가 되도록 뒹굴었다는 가시밭길을 닮았습니다. 인간이 자기 주장, 자기 교만, 자기 애착의 단단한 껍질을 벗고 타자를 위할 줄 아는 어진 마음을 하나님께 받는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_1. 하나님 나라를 보는 안경 중에서

 

사람이 소유가 많아져도 예전처럼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그 소유가 영성과 관계성을 끌어내리는 방향으로 작용하여 공동선 지수를 폭락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소득이 낮았던 때만큼 사람들 사이가 정겹지 않고 삭막해지는 원인이 되곤 합니다. 반면에 세계적 전염병의 대유행에 인류 사회가 공동의 대응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그동안 교류하면서도 경쟁하던 온갖 주체들이 이념, 지역, 인종, 성별, 국가, 종교, 계층, 빈부를 넘어 연대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교회와 세상이 오늘만 아니라 내일의 현실을 넓게 그리고 깊이 담아내는 공동선을 구현하려면, 이념을 넘어 생명으로, 개념을 넘어 실천으로, 사회성을 넘어 영성으로, 세상 나라를 넘어 하나님 나라로 확장되는 존재적, 심미적, 역사적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_2. 우리 곁에 늘 있어야 할 것 중에서

 

하나님 나라는 믿음, 소망, 사랑의 그물망으로 촘촘하게 짜인 나라입니다. 상호 신뢰하고 바라보며 끌어안는 나라가 되려면 ‘공동선 양식’(the mode of the common good)이 바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세상 나라는 불신, 절망, 미움이 퍼져 있는 나라입니다. 서로 신뢰하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비전을 북돋우는 데 바탕이 되는 공동선 네트가 이곳저곳 찢어진 지가 한참입니다. 공동선에 기반을 둔 사회 네트워크는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좋음의 근원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공동의 선으로(그래서 하나의 사회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 이 모든 좋음을 다 같이 누리는 삶을 죄로 인해 잠시 잃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되찾아 다시 누리는 삶이 하나님 나라의 시작에 해당하고,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날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해당합니다. 
_3. 밭에 감추인 보화 중에서

 

성경이 말하는 공동선은 현재 세대 혹은 미래 세대의 인류 번영 중 하나만을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성경의 하나님 나라는 우주 창조에서 역사의 종말까지, 더 정확히는 영원에서 영원까지도 포괄하는 나라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공동선 가치도 현재뿐 아니라 미래의 모든 세대까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인류 사회가 존재, 나눔, 절제를 추구하는 규모 있는 삶의 양식을 선택하는 것으로만 구체화될 수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좋은 삶이란 잘나가거나 잘 풀리는 삶이 아니라 가치 있는 삶, 의미 있는 삶, 모든 사람에게 박수 받을 만한 삶이 아닐까요? 남부럽지 않게 산다고는 했지만 돌아볼 때마다 가슴 한편에 허전함이 있다면 진정 좋은 삶이었다고 말하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인간은 사회적 성화, 경제적 성화가 되어야 진정한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오늘날 신학자들이 심도 있게 다루는 주제입니다.) 반대로 삶의 풍파를 거치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평생의 삶을 인간답게 채워 왔다는 마음이 든다면, 그의 황혼은 공허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기독교의 위대한 전통에서는 좋은 삶에 대한 사색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_4. 좋은 것의 숨은그림찾기 중에서

 

하나님 나라는 공동의 선을 위한 나라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나라는 잃은 양 한 마리가 반드시 돌아와야 사는 나라이지, 우리에 아흔아홉 마리나 있으니 괜찮아 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모두가 살기 위해 하나를 희생양으로 삼는 세상 나라와 달리 하나님 나라는 하나를 살림으로써 모두가 살게 되는 공동선의 나라입니다. 공동선 원리에 따르면, 양 한 마리라도 잃으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닙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한 몸과 지체로 이루어진 교회의 비밀입니다. 하나님이 예정하신 자녀들이 모두 돌아올 때까지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는 이유는 그분의 나라가 기계적 체제가 아니라 유기적 체제로 되어 있어서일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의 나라는 자녀 중 한 명이라도 떨어져 나가면 다른 모든 가족이 고통을 느끼는 하나의 유기체입니다.
_5.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중에서

 

공동선으로 물들어 있는 우주는 고통이 없는 우주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선으로 악을 이기는 정원으로 우주를 지으셨지, 악은 없지만 선도 없는 허무한 공터로 조성하지 않으셨습니다. 혼돈과 공허는 창조의 반대말입니다. 우리의 인생길도 걷다 보면 길에 패인 구멍이나 바닥에 널린 돌멩이로 인해 방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진 피터슨의 고백처럼, 그 길에서 우리 안에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어떤 사랑이 생겨났다면, 자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더 마음을 쓰는 사랑이 피어났다면, 자기가 갖지 못한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랑이 자라났다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뜻을 강요하지 않는 사랑을 가지게 되었다면, 평탄하지 않았던 그 역경과 고난의 길이 다름 아닌 최고선으로 가는 길이자 공동선으로 이끄는 좋은 길이었음을 깨닫는 날도 오지 않을까요.
_나가는 말. 함께 춤출 수 있는 무대가 되려면 중에서

 

5. 출판사 리뷰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전 세계 기독교가 떠들썩했고, 한국 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미나를 비롯한 여러 행사가 열리고 앞다투어 책도 쏟아졌다. 아쉬웠던 건, 출판이나 여러 행사에서 다뤄지는 인물이나 주제가 대동소이했다는 점이다. 그러던 중에 눈에 띄는 책이 한 권 있었다. 바로 『칼뱅과 공동선』(IVP)이었다. 한국 교회에서 칼뱅에 대한 연구는 무척 오래 이어져 왔지만 공동선을 중심으로 칼뱅의 신학을 정리한 연구는 전무했기에, ‘칼뱅’과 ‘공동선’이라는 두 단어의 조합만으로도 이 책의 출간은 신선했고 의의도 컸다. 
  국내엔 다소 생소한 공동선이라는 콘텐츠를 소개하여 주목받은 『칼뱅과 공동선』이었지만, 책의 성격이 다분히 신학적이었기에 좀더 넓은 독자층을 위한 공동선 입문서가 요구되었다. 그러던 중 2019년 가을에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성서유니온 월요강좌(“성경과 공동선”)가 6주 동안 진행되었고, 그 월요강좌의 내용과 2020년 봄 장신대에서 진행된 강의(“하나님나라와 신학”) 내용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담아낸 책이 바로 『하나님의 공동선』이다(송용원은 2020년부터 「매일성경」에 “성경 속 공동선을 찾아서”를 연재 중이기도 하다).
  공동선이란 뭘까? 익숙한 듯 생소한 개념이다 보니 ‘공동선’을 ‘공공성’이나 ‘공익’과 혼동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이 책은 공동선이 공공성(publicity)이나 공익(public good)과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 준다. 공공성이나 공익은 전체를 강조하는 개념이지만 공동선은 전체와 개인 모두를 소중하게 여기는 개념이다. 이렇듯 공동선은 개인들이 서로의 유익을 소중히 여기며 전체의 유익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포괄한다. 공공성이나 공익이 자칫 전체의 이름으로 개인의 선을 침해할 수 있는 부작용을 공동선은 늘 염두에 두고 있다. 그래서 공동선은 전체와 개인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긴다. 즉 공동선은 나와 너, 우리 모두의 좋음이다. 
  또한 서로를 (그리고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바로 공동선이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그 사랑으로 살아간다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을 비추는 거울, 하나님을 드러내는 얼굴이 될 것이다. 자꾸만 신앙이 사유화되어 가는 한국 교회에,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과 헌신을 강요해 온 한국 교회에, 개인의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모두를 소중히 여기는 (하나님 나라의 속성인) 공동선의 삶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저자와 출판사의 소망이 이 책에 오롯이 담겨 있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은 앞으로의 세계가 ‘코로나 이전’(Before Corona)과 ‘코로나 이후’(After Corona)로 확연히 구분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코로나19 사태가 온 세계를 이기적 개인주의로 치닫던 ‘공동선 이전’(Before Common Good) 시대에서 모두가 모두를 돌보는 ‘공동선 이후’(After Common Good) 시대로 이끄는 예기치 않은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 봅니다. 그것은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공동의 재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전(Before Christ) 시대가 아닌 주후(After Christ) 시대 속에서 (비그리스도인들과) 바베트의 만찬을 나누며, 모든 인류에게 공동의 희망이 되어 주시는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_ 들어가는 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기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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